진료
어느 날 항문 쪽이 간지럽다 싶더니 여드름 같은 종기가 난 것이 보였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며칠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았다. 마침내 아파서 앉아 있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도저히 급하게 연차를 쓰고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이 치루라는 항문 질환이라면서 수술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치루로 발전하는 항문농양과 일반 종기를 오진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처음 간 병원을 못 믿은 건 아니었지만, '수술'이라는 단어에 (너무 무서워서) 일반 종기일 수도 있다는 실낱 같은 희망을 가지고 다른 병원도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 선택
폭풍 검색 끝에 서울에 있는 대x병원에 가 보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웬걸. 대x병원에서는 한 달 정도 두고 보자고 했다. 치루일 확률이 높지만 아직 치루관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으니 한 달 정도 기다려보자고 했다. 그런데 한 달 뒤 수술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한 달 동안 마음이 더 지옥일 거 같기도 하고 당장에 아프기도 해서 또다시 폭풍 검색. 치핵이 나온 것과는 달리 치루는 면역이 약해진 틈에 생긴 염증이라 수술 말고는 치료법이 없고 놔두면 더 심각해 지거나 재발할 뿐이라는 게시물 밖에 없음...ㅠㅠ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병원을 한 번 더 가보기로 했다. 항문질환 치료로 유명하다는 송x병원. 이곳 의사 쌤의 진단은 첫 병원과 같았다. “치루관이 만져짐. 수술해야 됨. 수술 말고는 답 없음.”라고 하심.ㅠㅠ
수술 전날은 금식을 해야 한다. 그래서 물도 못 마시는데 하필 생리가 시작되었다. 나는 생리통이 심하다. 그래서 보통 진통제를 하루에 3-4알은 먹는데 금식 때문에 진통제도 못 먹고 생리통에 시달리느라 한 잠도 못 자고 최악의 컨디션에서 병원으로 향했다. 인터넷에서 본 후기에서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간단한 수술이라고 했는데, 나는 마취를 했는데도 묵직한 생리통이 느껴져 너무너무 힘들었다. 수술 시간도 한 20분은 걸렸다.
2박 3일 입원
2박 3일 입원을 했다. 1박 2일 입원을 권하는 병원도 있다. 무통주사 꽂고 퇴원하면 되니 1박 2일도 괜찮겠다 싶기는 하다. 어쨌든 난 병원에서 2박 3일을 권해서 그렇게 했다. 심각한 질환도 아니니 병실은 3인 병실이면 되겠지? 싶었다. 실수였다. 어떤 사람들과 병실을 쓰게 될지 알 수 없는 게 함정이었다. 나와 같은 병실을 쓰게 된 분들은 깨어 있는 내내 수다를 떨거나, 전화를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간호사를 불러댔다. 조금 잠잠해지면 지는가 싶으면 코를 골아서... 이분들이 깨어 있을 때나 잠들어 있을 때나 (시끄러움) 나는 제대로 쉬지를 못하였다. 아파서 병원에 입원한 건데 입원 기간 동안 오히려 잠을 못잠..ㅠㅠ 후회가 밀려왔다. 돈을 좀 쓰더라도 1인실에서 푹 쉴걸...
수술 후 병원에서 먹었던 밥이다. 매운 음식, 밀가루는 안 좋다고 했는데, 고추장이 들어간 음식이나, 김치, 만두 정도는 괜찮은가 보다. (병원에서 주는 거니까 믿고 먹음) 하지만 배변이 두려워 반도 먹지 못했었지… 흑
마취가 깨면서 본격적인 고통이 시작되는데... 하필 제일 힘든 생리 둘째 날이었다. 수술 후 회복에는 좌욕이 제일 중요하다. 좌욕은 항문의 혈액순환을 돕고 환부를 깨끗하게 해준다. 그런데 생리일 때는 좌욕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 (생리 중에는 좌욕을 하면 안 된다고 의사쌤이 말씀하심.) 수술한 날부터 일주일간 나는 좌욕을 전혀 할 수 없었다. ㅠㅠ 회복은 느리고 아프고 옆에는 시끄러워 잠은 못 자겠고 환장할 노릇. 몸이 너무 아프고 힘드니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종일 짜증만 났던 2박 3일... 거즈에 생리혈이 함께 묻어 나오니 상태가 호전되어 출혈이 줄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혹시나 누군가 같은 수술을 받아야 한다면, 생리 주기는 절대 피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생리 때문에 회복 기간이 일주일은 늦어진 것 같다.
생리 중 수술? --> YES
생리 중 좌욕? --> NO
1주 차
일주일은 정말 누워만 있어야 한다. 수술 전에 후기를 엄청나게 찾아봤는데 출산보다 고통스럽다는 글들이 종종 보였다. 그땐 정말 극도의 공포감을 느꼈는데 막상 수술 직후에는 얼얼한 느낌 + 생리통 같은 묵직한 고통이 지속되었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들었지만 그래도 참을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블로거들이 말한 고통은 배변 시 고통이었음. 움직일 때마다 느껴지는 고통은 진통제로 어느 정도 해결이 되지만 배변 시 고통은 고스란히 느낄 수밖에 없다. 후기에 보면 면도 칼이 나오는 느낌이라고 했는데... 진짜 그렇다. 거기에서 면도 칼이 나오는 느낌이다. x가 찢어지는 고통. 딱 그거다. 수술 후 며칠간은 너무 힘들어서 입맛이 없었고 입맛이 돌아와도 화장실 가는 게 두려워 별로 먹고 싶지가 않았다. 내가 아무리 천천히, 안 아프게 싸고 싶어도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오는 x....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식단은 철저히 병원 식단 비스무레하게 먹었다.
2주 차
2주 차부터는 집안을 돌아다닐 정도로 참을만하다. 이때부터 진통제 복용량이 줄었던 것 같다. (1주 차 때는 화장실 가는 게 두려워서 무조건 일어나자마자 진통제 먹음ㅠㅠ) 시간이 지나면서 x에서 나오는 면도 칼의 크기가 줄어드는 느낌,,, 혹시나 변 상태가 좋지 않으면 잘못될까 두려워 2주 차도 철저하게 병원 식단을 고수했다. 미역국이나 야채 듬뿍에 단백질 조금, 매운 반찬은 김치 정도만 먹었던 것 같다.
3주 차
3주 차가 되면 외출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배변 후 샤워기를 사용해 물로 살살 씻어낸 뒤에 좌욕을 해주는, 다시 말해 위생적인 처리가 필수인데, 밖에서 신호가 오면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여전히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이 부담스럽다. (부득이할 경우 물티슈를 들고 다니며 깨끗이 닦아줘야 하지만 찝찝하고 두려움....ㅠㅠ) 3주 차 때부터는 출혈은 거의 멎고 약간의 진물만 나온다.
4주 차
철저히 지켜오던 식단이 이쯤 되니 지겹다. 조금씩 일탈을 하기 시작한다. 보쌈과 막국수를 시켜 먹었다가 화장실 가는 게 다시 힘들어져 심기일전했다. 회사에 복귀했는데 역시나 회사는 x같은 곳이다. 멎었던 피가 다시 난다ㅠㅠ 생각보다 회복이 느리다. 찢고 꿰맨 상처이니 가만히 놔두면 아물 텐데, 부위가 부위이니 만큼 매일매일 계속 쓰니... ㅠㅠ 질환 정도와 사람의 컨디션마다 회복 속도도 다르다. 같이 입원했던 분들 모두 나보다 회복이 1~2주는 빨랐음. (심지어 한 분은 60대, 다른 한 분은 50대...) 아직도 무리한 운동은 하면 안 된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즐겨 하는 내게 너무 고통스러운 시기이다. 이참에 필라테스나 요가로 종목을 바꿔야 하나?
5~6주 차
회복이 잘 되나 싶다가 회사에 복귀하니 상태가 좀 안 좋아졌다(배변 시 약간의 통증...). 하루에 9시간 정도씩 앉아 항문으로 피가 쏠리고 좌욕도 잘 못하고 배변 시에도 위생적으로 처리하지 못하니 그런 듯. 그리고 생리도 다시 시작되었다. 생리혈이 환부에 들어가 살짝 따갑기도 하고 간지럽기도 하다. 수술 뒤 운동도 못하면서 몸 상태가 안 좋아지니 생리통도 전보다 더 심해짐. 생리혈이 환부에 들어가는 것을 막으면 호전될까 싶어 생전 처음 탐폰도 사용해 봤다.